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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전미술의 태동기( ~ 1969)

한밭 대전은 차령산맥이 맥(脈)을 이어주는 아름다운 분지로써 가장 평온하고 온화한 중부도시이다. 남서쪽으로는 보문산과 구봉산이 계룡산을 향해 마치 양팔로 포근하게 감싸 안고 있는듯 병풍처럼 둘러 싸여있다.  그리고 북쪽으로 갑천이 큰 내를 이루어 금강으로 만나 젖줄이 되어 서북쪽으로 평야를 이루는데 이곳이 한밭 대전이다.

나를 태어나게 해준 고향이란 점도 있지만 오십수년 지내는 중에도 큰 재앙을 당하지 않고 살아온 것을 보면 이곳은 살기좋은 고장이라는 것을 증명해 준 셈이다.  사람들 마음도 넉넉하니 타지방 사람들과도 부드럽게 수용을 잘해서인지 국가 중요 청사가 이곳으로 하나 둘 옮겨오게 되어 전국의 시선이 한 곳으로 집중되는 곳, 그래서 자연스럽게 고급 문화와 고급인력이 더불어 찾아 들어 누구나 한번쯤은 머물며 생활하고픈 광역시로 탈바꿈 되었다.  지나간 세월을 뒤돌아보면 대전의 문화판도가 바뀐 것은 6.25사변이 아닌가 한다.  민족의 대이동을 통하여 한밭 대전은 전국적인 문화양상이 뒤범벅이 되다시피한 가운데 이곳 나름대로의 색깔을 지닌 다양한 문화를 간직하게 되었다.

미술을 전공하는 사람도, 대전 사람은 서울로, 혹은 타지방으로, 타지방에 있던 사람은 대전으로 이주하여 대전 특유의 전원적인 미술양식이 마치 인도의 서북방에서 꽃폈던 간다라 미술처럼 독특한 지역적 특성을 가질수도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1945 ~ 1949년을 기점으로 대전에 들어온 작가로는 주로 초ㆍ중ㆍ고에서 미술을 지도하는 교사가 주를 이루었으며 간간히 초상화나 간판을 그리는 상업화가들을 꼽을 수 있다.  한국화가로는 이응로, 이경배, 서양하가로는 이동훈, 박성섭, 김기숙을 들 수 있다.

공주출신 이경배는 문인화에 능하였고 예산을 중심으로 활동을 한 유랑화가 이응로는 선전에도 특선하고 대전에서 간판사업을 크게 하다가 큰 뜻을 품고 프랑스에 건너가 명성을 얻었다.  그 뒤 동백림 간첩사건에 연루되어 옥고도 치룬뒤 프랑스로 귀화하였다.

동경에서 유학하여 서양화를 전공하였던 박성섭은 청양태생으로 해방 이전부터 대전에 거주하였으며, 선전에서도 입선하였다. 대전 사범학교미술교사로 있다가 상공장려관 관장으로 부임(1947년)함에 따라 그 후임으로 대저공업중학교에 근무하던 이동훈 선생이 대전사범학교로 전입해 왔다.

김기숙의 고향선배인 고 박성섭(1903 ~ 1974)은 최초로 사설 미술협회를 조직하였으며 대전미술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다가 1974년 타계했고 그의 손자 박상국은 현재 천안에서 미술교사로 교편을 잡고 있으며 충청남도 도전 초대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1944년에 평안도에서 대전으로 이주한 이동훈(1903 ~ 1984)은 대전공업중학교와 대전사범학교(현 충남고)에 재직하면서 제자 양성과 작품제작에 몰두하였다.  객지 생활에 고독함을 달래기 위해 작품제작에만 몰두했으며 우직한 성품에 키도 크며 웃음소리가 호탕하였다.

이 때 대전공업중학교에 다니던 '임봉재는 곧잘 스승으로 모셨던 이동훈선생이 근무하는 대전사범학교에 청강생으로 공부했으며, 학교부근의 청국 밀밭에서 큰 밀대 모자를 눌러 쓰고 진지하게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라고 그 시대 대전사범1회 졸업생인 이정식, 권탁원은 회고하였다.  1949년 제1회 대한민국 미술전람회에서 '목장의 아침'으로 특선을 차지하여 대전지방 미술계에 새바람을 일으켰다.

홍성에서 활동하던 김기숙은 대전으로 자리를 옮겨 여러 학교와 충청남도 학무과 미술장학사로 지내면서 1958 ~ 1961년 까지 충남미술협회 회장직을 맡아 미술교사들을 미협의 주축이 되도록 이끌어 왔다.  또한 한국미술교육 연구회 실행위원으로 「새로운 학생미술」을 저술하여 미술 교육에도 힘썼으며 서울, 인천, 대전에서 6회의 개인전('47, '56, '59, '64, '70, '76)을 개최하였고이 고장 미술인들에게 귀감이 되었다고 스승으로 모셨던 임봉재 회원은 회고하였다.

이인영의 스승인 윤후근 선생은 전주사범 출신으로 선전(1939년 18회)에 출품하였으며 이동훈선생과 더불어 이 지방에 미술교육과 미술협회의 발전을 도모하였다.

1955년 서울의 화단에서는 고희동씨를 회장으로 한 대한 미술협회와 장발씨를 회장으로 한 한국미협이 서로 양분되어 전시회가 따로 열리던 시대였다.  대전에서도 국전 옹호파와 국전 반대파로 나누어 서로간에 갈등이 있었다고 전해지며 어떻게 보면 견제세력을 통하여 발전의 초석이 다져졌다고도 본다.

1952년 연기군 금남출신 김철호와 부여출신 이인영이 대전에 정착하였고, 이 무렵에 홍동식, 윤후근, 임봉재, 송진세, 유우연, 조영동, 이남규, 이지휘, 박여일이 서양화를 그렸다.  민경갑(호수돈여중고)도 잠시 이곳에서 활동하였다.

또한 이명희(한국화), 권탁원(한국화), 송진세(서양화), 손중성(서양화), 박영홍(서양화), 유우연(서양화)등은 문창동의 도립병원 뒤에 거주하던 이동훈선생의 화실에서 그림을 배우면서 제1회 '미술동인전'(1960. 11. 1 ~ 5 대전문화원)을 개최한 맴버들이 된다.  이들중 권탁원(대전사범1회 졸업)은 선화국민학교에 근무하던 처녀교사로서 국전에 3회 연속 입선을 하여 스승이였던 조중현(한국화)의 기대에 찬 수제자다운 면모를 보여주었다고 전한다.

1953년 박성섭, 이동훈, 박승무, 김기숙, 이인영, 김철호, 임상묵 등이 주축이 되어 충남미술협회를 발족하였고 이 시기에 최종태, 임봉재, 이남규, 이지휘, 조영동, 민경갑, 이종수 등이 대전에서 활동한 청년미술가들이었다.  그리고 이해 제2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서 이동훈의 '목장' 그림이 문교부 장관상을 수상하게 되자 대전미술계에 버팀목으로 새바람을 불어넣어 준 계기를 만들었고 중앙과의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교두보가 가설되었다고 본다.  또한 대전 최초의 비구상 계열인 신봉균, 조영동, 이남규, 이지휘는 이 지역에 '추상화'의 선구자라고 말할 수 있다.

1954년 천안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주로 천안에 거주하던 김화경(한국화)은 제3회 국전때 '국전 낙선전람회'를 개최한 주동인물의 한 사람으로 그 시대 국전 심사위원들에게 일침을 주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54년 11월 김화경, 정진철을 위주로 10여명이 일반의 냉소를 무릅쓰고 서울 화신백화점 화랑에서 국전에 대한 도전의 전시회였고 심사위원에게 말없는 항의였다'(경향신문 1962년 10월 20일 신문에 게제된 내용)

1957년 부터 박승무(한국화)는 대전에 정착하여 우직한 마음으로 홀로 은둔하여 '설경'작품에 매진하였다.  이 시기에 고등학교에 재학중인 ㅇ리종상, 유희영, 김인중, 이철주(현 중앙대 에술대학장), 유병창, 윤병화, 최회권, 송순옥, 이근신, 문정수, 송영숙이 주동이 된 '루불 미술동인전'이 활발하였다.  김철호선생과 홍동식선생이 지도하였으며 후에 미술인들은 대전 최초의 고교생'미술그룹전'이라고 말하였다.

1960년대 초 조중현(한국화)은 1959 ~ 1961년까지 대전공업고등학교 미술교사로 봉직하면서 제자양성과 작품활동을 하였다.  이당 김은호의 수제자 중의 하나로 우리나라의 한국화에 한 획을 남겼다.

1960년 제19회 국전에서 최종태는 조소 부문에서 '서있는 여인'으로 문교부 장관상을 수상하였다.

1961년 녹청회전은 한국화에 조중현, 김화경, 한유동(김은호 제자) 서양화로는 김성재, 황진국, 정택은, 김철호(간사) 심죽자, 금동원, 이창호, 윤후근, 이인영은 대전의 상공장려관 뒷길에 위치한 '개미다방'에서 녹청회원전을 개최하였다.

녹청회는 1958년에서 1961년에 있었던 현대미술그룹이며 당시 천안중학교에 재직중인 김화경(동양화), 김성재(당시 천안여중 재직), 조중현, 황진국(조치원여중), 한유동(합덕중)등이 안면도에서 처음 그룹을 결성하였다고 1955년도 충청남도 교육위원회 장학위원이었던 정택은 선생은 그 당시를 회고하였다.  그 결성의 시원을 찾아보면 1950년대 미술 교육의 큰 행사로 합덕중학교에 미술교사로 근무하던 한유동선생이 도 지정학교 연구발표를 하는 현장에서 당시 급진적인 최신의 미술을 하는 작가들이 모여 그룹을 결성하고자 뜻을 모았다고 한다.

그후 첫 현대미술 전시회를 광천의 정거장앞 '십자성 다방'에서 1957년 충남 최초의 '모더니스트'를 자부하는 6인이 모여 전시를 하였고 안면도에서 '워크샵'을 가졌으나 바로 황진국 선생이 장티프스에 걸려 무산되었으며 그 후 천안정거장 앞에 살던 안과의사의 도움으로 살아났다고 한다.  당시의 안면도는 5일에 한번씩 ㅐ가 들어오므로 황진국 선생의 와병중에도 어쩔 수 없이 5일동안 안면도에서 묵으면서 현대미술운동에 대한 논의를 진지하게 한것으로 추정된다.  결국 요약해보면 제1회때에는 김화경(동양화), 김성재(유화), 정택은(도안), 한유동(동양화), 이창호(공예, 옵서버)의 일본 동경 유학팀으로 전시를 치루었고 2회때에는 대전으로 옮겨 대덕구청 자리옆 남양다방에서 대전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윤후근, 이동훈, 김철호가 합세하여 김화경, 김성재, 정택은, 한유동, 이창호, 윤후근, 이동훈, 김철호의 본격적인 그룹전을 하였다고 한다.(6회의 녹청회전 끝무렵 국전에서 특선한 이인영이 가입을 하여 전시회를 더욱 빛나게 하였다.)

1953년 충남미술협회가 발족한뒤 한국미협 대전지부가 인준될때까지 7회까지 이어온 '충남미협'의 활동사는 다른 지역보다 일찍 출발하였고 1960년도에 출품한 작가들의 행보는 사회의 무관심을 관심으로 이끌었으며 주로 중ㆍ고등학교에서 미술을 담당한 교사들이었다.

1955년 '도 미술 장학위원'이었던 정택은 선생은 색채학과 판화면에 뛰어나 이 지역 미술발전에 공이 컸다고 전한다.(김철호선생 증언)


1960(4293. 11. 11 ~ 15) 7회 美  協  展

분과

참가자

작품명

근무처

이인영(李仁榮)
이지홍(李志鴻)
윤완호(尹玩鎬)
심상규(沈相奎)
황진국(黃鎭國)
임봉재(任奉宰)
이남규(李南奎)
김철호(金哲鎬)
김기숙(金基淑)
윤후근(尹厚根)
신봉균(申鳳均)
김동승(金東昇)
이동훈(李東勳)
홍동식(洪東植)
김태주(金泰周)
박태호(朴泰鎬)
조영동(趙營東)

마곡사, 나무, 오후
고산사,은진미륵
가을, 해바라기
소녀, 개, 새
복숭아
가을, 절규
앉은 여인
풍경, 나리있는 풍경
맨드라미
복전암 풍경
秋心
얼굴, 정물

정물
여인
투견
등나무, 성당

한밭 여자중학교
충남 중학교
강경 여자중학교
원동 초등학교
조치원 중학교
대전 공업고등학교
대전 중학교
대전 고등학교
도 학무과 장학사
대전 여자 중학교
한밭 중학교
한밭 여자중학교
충남 여자중학교
대전 여자고등학교
대성 중학교
온양 중학교
목포 교육대학교

동양화부

고경자(高京子)
김동순(金東淳)
성낙일(成樂逸)
우민형(禹民亨)
허   훈(許   薰)
김상순(金相淳)
최종태(催鐘泰)
임상묵(林庠默)

풍경
음과 향, 풍속
도옥(陶屋)
동경(冬景), 무속
수선(水仙)
욕망에의 고독
두상
어(漁)


표구사

호수돈 여자중ㆍ고교


대성 고등학교
보문 고등학교

 

위의 도표는 제7회 충남미술협회전에 출품한 25명의 참가자 명단과 작품명 및 그시절 회원들의 당시 근무처이다.

1962년 5월 15일 한국예총 산하 한국미술협회에서 대전미술협회(구 충남미협)를 인준하기가지는 사전에 이곳 대전을 중심으로 '화가들 모임'이 있었고(충남미협 녹청회) 나름대로 미술단체 활동에 따른 전시회가 있었기에 인준이 된 것이라 본다.  주로 이동훈 화실과 현 동양 백화점 뒷골목에 있는 서라벌 다방(전 산강화랑 대표 장정일씨 부친 경영)에서 주로 현직 미술교사들이 역사적인 한국미협 대전지부전 창립을 위한 준비작업이 전개되어 드디어 1962년 5월 16일 대전방송국안에 있었던 '충남공보관 전시실'에서 한국미협인증 제1회 미협전(5.16혁명 제1준ㄴ 기념)이 개막되었다.

제1회 5.16혁명 기념전이라고 일컬었던 이 전시회는 명실공히 대전미협이 한국미술협회에 정식으로 등록이 된 후의 첫 전시회라는 점이 중요하다.  회장은 이동훈, 부회장은 김기숙, 간사 정택은씨였다.  창립전에 출품된 작가로는 다음과 같다.

한국화 : 우민형, 이만구, 권탁원, 이명희, 김동순
서양화 : 이동훈, 김성재, 김철호, 홍동식, 이남규, 조영동, 윤후근, 서진달, 김동승, 신봉균, 이지홍,
            박태호, 조한흥, 황진국, 유우연, 이   영, 송용달, 손중성, 박영홍
조   소 : 최종태
판   화 : 정택은
디자인 : 임상묵, 정태진 외 28명이다.

같은 해에 '미협전'이 대전문화원 화랑에서 열렸는데 22명의 회원들이 작품을 출품하였다.  새로 출품한 회원은 김기숙, 육순양씨였다.

대전고 출신으로 서울대학을 다니던 이종상은 11회 국전에서 한국화부문 '내각수반상'을 수상하였다.(12회 국전에서도 문교부 장관상 수상)

이 시대 고교서클 '죽미회'는 대전공고에 재학중인 정명희, 양창제, 김   룡과 한밭상고에 재학중인 임양수, 이영수가 개최한 '5인전'이 충남공보관에서 열렸다.(1962. 10, 1 ~ 7)

이들은 대전미술 2세들의 막내격에 속하며 위로는 이종수, 유희영, 김인중, 송번수, 이준봉, 김완배, 이성태씨를, 김소자, 최인자, 강성열, 김완식, 차영민, 김송효, 김재성, 김봉경, 최영환, 유병돈, 이효숙, 전옥주는 같은 학년으로, 이영수, 김여성, 최창옥, 이영희, 안수복, 조창레, 정필지, 홍명섭, 유근영, 백승철, 정규천, 유병호 등은 아래후배로 이들은 서후배간에 미술에 대하여 교분을 나누었다.

특히 이들 중에 미국으로 이주한 재미화가 김여성과 경기도 지방으로 이주한 이영수는 잘 어울렸으며 그림에 대한 재치가 뛰어났다고 그 시절 후배미술인 최영근 교수는 회고하였다.

또한 전시회때마다 아낌없는 지도조언을 해주셨던 미술교사로는 이동훈(충남고), 윤후근(대전여중), 홍동식(대전여고), 김철호(대전고교), 이남규(서양화가), 성기인(한밭상고), 서진달(대전여상), 이지홍(충남중), 김석천(미술인)선생을 들 수가 있다.

1963년 대전미협전에 출품한 새로운 회원으로서는 이지휘, 김관회, 이명희, 권탁ㅇ뤈, 이종수씨였으며 5.16혁명 2주년 기념연합전시회(미술, 사진, 시화)가 대전문화원에서 열렸다.

이 시대의 문인들과 미술가, 사진작가들이 한자리에서 한 최초의 전시회라는 점이 괄목할만한 행사였다.

시화전에 출품한 작가는 김대현, 안영진, 이양수, 최원규, 송하섭, 이석호, 박용래, 이재복, 신정식, 유동삼씨였고 미술전에는 김동승, 임봉재, 윤후근, 김성재, 이동훈, 황진국, 이지휘, 조영동, 이종수, 이영, 김철호, 이인여, 권탁원, 우민형씨였고 사진작가로는 전성, 박병준, 박대관, 김경일, 박여일, 김이식, 박병준, 김동철, 김남용, 박향이었다.

1963년 제1회 '재경 충남미술 학우회 미술전'은 주로 서울에서 미술대학을 다니는 동인들로서 대전지역의 미술을 전공하려는 학생들에게 새로운 미술정보를 알리는데 일익을 담당하였다.  서울대, 홍익대, 서라벌예대, 이화여대에서 미술을 전공한 졸업생과 재학생으로 65명 회원들은 다음과 같다.

동양화 : 이영수, 정규성, 정상원, 서기원
서양화 : 권영우, 김인중, 유병창, 이상완, 안소자, 배일상, 하동철, 이설자
응용미술 : 이종수
건축미술 : 최영서, 송정호

※ 명예회원으로는
서울대 : 유희영, 이종상, 김인중, 이종수, 민중직, 김원중
이화여대 : 김순자, 고경자
홍익미대 : 오태학, 이옹휘, 하태진, 이영복

※ 회원으로는
서울미대 : 정상원, 이설자, 홍성표, 하동철, 안소자, 안종문, 이철주, 박종대, 윤여용
이화여대미대 : 문명자, 최휘강, 최미강
서라벌예대미대 : 신형섭
홍익미대 : 권영우, 유병창, 홍승익, 신동주, 배일상, 이상완, 이영수, 송정호, 정규선, 김정열, 김철성,
               남궁흥자, 목계순, 박청자, 서기원, 홍병학, 이선렬, 민덕현, 김계호, 유일기, 조성묵,
               김경화, 최영서, 송번수, 이병선

이 시기에 서울에 입학한 미술대학생으로는 홍익미대 강성렬, 김완식, 정명희, 서라벌예대 미술과 김관호, 임양수, 이종석, 장우의, 전래식, 전옥주 그리고 수도 여사대 미술과에 이효숙이 있었다.

대전 문화원 후원하에 육성된 '미상록' 창립전(1964)은 송진세 선생의 지도로 대전시내에 거주하는 고등학교 미술반원들의 그룹전으로 현재 31년의 세월속에 성장을 해왔으며 회원 중 대전화단에서 활동하는 사람 중에는 김치중('95 대전 미협회장), 최영근('95 대전예총부회장), 백승철(대전판화협회회장), 이현구(호수돈여고 미술교사)씨 등이 그 시대 창립 맴버였다.

1966년 이인영은 제15회 국전에서 (서양화부문) '오후'로 국회의장상을 수상하였다.

충청남도 학무과 미술장학사 김기숙선생은 '63년에 공주교대로, '68년에는 인천교대 교수가 되었다.(문교부 미술편수관 역임)

대성고 미술교사였던 최종태선생은 서울대 교수, 대전공고 미술교사였던 이지휘선생은 대구계명대학교 교수로, 조영동, 이남규선생은 공주교대로, 보문고교 임상묵선생은 충북대학교 교수로 자리를 옮겼다.

청소년 미술활동에 활력소를 제공해준 미상록 창립 지도교사였던 송진세 선생은 1970년 서울 미협으로 옮겼다.

1968년 충남고등학교에서 정년퇴직한 이동훈 선생은, 서울수도여사대 미술과 명예교수로 출강하게 되어 대전미술은 전환기를 맞이하게 된다.  이에 대전미술협회를 이끌었던 일부 주역들이 타지역의 미술발전을 위해 떠났다.

1969년도 정기총회에서 대전미협 회장에 김철호 선생이 취임하면서 경부, 호남고속도로가 뚫리듯 대전미협의 태동기에서 성장기를 향해 나갔으며 대전 최초의 전국학생미술 실기대회를 개최하여(총무 신봉균) 학생미술교육에 새바람을 넣어주었다.

다가오는 1970년대의 충청남도 주최의 '충청남도 미술전람회' 탄생과 대전 실업초급대학교와 목원대학교 및 한남대학교에 미술과가 신설되는 새로운 전환기의 대전미술을 맞이하게 된다.

대전 미협이 해방전후를 통하여 60년대 말까지 흘러온 세월을 뒤돌아 보면 먹고살기 바쁜 생존경쟁의 틈바구니 속에서 문화예술을 향유하기란 그림의 떡으로 어렵게 생활해왔다고 말할 수 있다.

이 지역엔 미술대학도 없었기에 서울로 향해야만 되었던 그 시절 논, 밭 팔아 등록금을 마련했고 혹은 아르바이트나 개인지도를 해야만 했던 그 시대에는 '미술인이 되면 밥굶는다.'라는 홀대와 냉대를 받아가면서도 미술공부를 하였던 선배, 동료, 후배 미술인들에게 뜨거운 위로와 감사를 드리고 싶다.

이 지방미술의 풍토조성에 밑거름이 되었던 장인, 묵객들이 해방전후와 6.25, 5.16등 어려운 시대의 와전 속에서도 묵묵히 대전미협을 육성시켜온 것은 작품의 질이나 수준을 논하기 전에 그 시대를 수놓았던 분들의 에술에 대한 뜨거운 정열의 소산으로 본다.

낮엔 교단에서 후학을 지도하였고 밤엔 창작을 해야만 했던 대전미술 유입 1세대인 고 박성섭, 고 이동훈선생과 김기숙선생은 구준히 대전의 후진양성과 미협을 읶르어 오셨으며 교단에서 정년을 다하신 윤후근, 김철호, 홍동식, 정택은, 신봉균선생과 작고하신 고 박승무(한국화), 고 이응로(한국화), 고 이경배(한국화), 고 조중현(한국화), 고 김화경(한국화), 고 황진국(서양화), 고 김성재(서양화), 고 장욱진(서양화), 고 김동선(서예가), 고 우민형(한국화), 고 김수평(서양화), 고 이창호, 고 윤완호(한국화), 고 김윤기(서양화), 고 강신철(한국화), 고 이종훈(디자인)선생께 이지역 미술발전을 위해 노력한 공을 고맙게 생각한다.

예술과 문화적인 미비한 그 시절을 역경을 못참아 고향을 떠나 서울에서, 타지역에서 고통을 이겨가며 명성을 얻은 이 고장 출신 미술인들이 90년대 들어 고향에서 주선한 전시회 '우정의 만남전'을 통하여 ['93년도 : 최종태(조각가), 이종수(도예가), '94년도 : 이지휘(서양화), 임봉재(서양화), 조영동(서양화), '95년도 : 김기숙(서양화), 윤후근(서양화), 김관호(서양화), 김철호(서양화), 박태호(서양화), 정택은(판화), 진문섭(서양화), 홍동식(서양화)] 고향에 대한 따뜻한 옛정과 우정을 되살리고 있다.(대전중구문화원 원장 박동규 주선)

재미화가 김여성은 '오원화랑'에서 재불화가 김인중은 '삼성생명전시장'에서 귀향 전시회를 가졌으며 또한 한림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이 종상화백의 개인전 '진경의 원형을 향한 구도, 일랑, 이종상의 회향전' ('95. 10. 16 ~ 12. 27)도 같은 맥락의 미술전시회로써 어려웠던 시절객지에서 앞만 보고 치달려야 했던 흘러간 세월을 뒤돌아 보았다.  오늘의 대전은 질적이나 양적으로 팽배해졌교 대전 EXPO 개최를 통하여 시민들의 의식도 높아져 늦은 감은 있지만 박물관이니 미술회관건립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런때일수록 대전 시민들의 몸과 마음이 건전하도록 이끌어주는 것이 문화인들의 정서 교육이라고 본다.  왜냐하면 미술은 인간이 살아가는데 산소와도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대전에도 그간 많은 미술단체가 우후죽순처럼 탄생하였다.  그러나 이 단체들은 대전미협이라는 큰 나무에서 얻은 결실이니 대전미협을 중심으로 한덩어리가 되어 지방미술이 세계적이 되도록 새로운 앞날을 창조해야 될 것이며 어제와 오늘의 미래의 맥이 아름답게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임양수
1945년 대전출생 / 현, 대전미협 감사
한국교원대학교 대학원 졸업(미술교육전공)
한국미술교육학회 창립부회장 역임
대전미술교육 연구회 회원 / 이신회, 형상전, 에우전 회원